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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지 꽤 됐습니다.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은 이제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신경 쓰이는 게 하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나를 완전히 잊어버렸을까 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잘 지내고 있을까 봐.

가끔 SNS를 열어봅니다.

딱히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어떻게 지내나 확인합니다.

다시 사귀고 싶은 건 아닌데, 잊히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 마음은 뭘까요?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데 잊히긴 싫은 이유

이 두 가지가 서로 모순처럼 보이지만, 사실 다른 감정입니다.

'그 사람과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마음과 '그 사람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출발점이 다릅니다.

전자는 그 사람을 향한 마음이고, 후자는 나 자신에 대한 마음에 더 가깝습니다.

심리학에는 'mattering'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중요한 존재라고 느끼는 감각을 말합니다.

이 개념을 생각해 보면, 이별 후에도 '그 사람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를 신경 쓰는 마음을 조금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관계는 끝났지만, 그 관계 안에서 내가 의미 있는 존재였다는 감각까지 같이 끝나버리는 건 아닌 셈입니다.

어쩌면 여기에는 이런 마음도 섞여 있는지 모릅니다.

오랜 시간과 감정을 나눴던 사람에게 이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됐다는 생각은,

그 관계 자체가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니 잊히기 싫은 마음은 사실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시간이 의미 있었다는 걸 확인받고 싶은 마음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 사람의 SNS를 자꾸 확인하게 될까요?

여기서 흔히 하는 행동이 있습니다.

헤어진 상대의 SNS를 몰래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이 행동을 살펴본 연구가 있습니다.

464명을 조사한 연구에서, 전 연인의 페이스북을 자주 들여다본 사람일수록 이별에 대한 고통과 부정적인 감정,

그리움이 더 컸고, 개인적인 성장은 오히려 낮게 나타났습니다.

다만 이 연구는 원인과 결과를 확정한 연구는 아닙니다.

SNS를 봐서 힘든 건지, 아직 힘들어서 자꾸 보게 되는 건지는 이 결과만으로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적어도 이 연구 안에서는, 상대를 계속 지켜보는 행동과 이별 후 잘 회복되지 않는 상태가 함께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봐도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아닌데 왜 또 확인할까요.

어쩌면 우리가 찾는 건 그 사람의 근황 자체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저 사람도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그 사람에게도 의미가 있었을까?"

이런 걸 확인하고 싶은 것일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같은 이유로 SNS를 확인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별 후 상대의 근황을 확인하려는 행동에는 이런 마음이 섞여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마음을 어떻게 다루면 좋을까요?

SNS를 당장 끊는 것부터 시작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먼저 해볼 일은 확인하고 싶은 순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내가 무엇을 확인하려는지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전 애인의 SNS를 열고 싶어 졌다면 잠깐 멈춰서 이렇게 물어보는 겁니다.

“나는 지금 그 사람의 근황이 궁금한 걸까, 아니면 그 사람이 아직 나를 기억하고 있는지가 궁금한 걸까?”

생각보다 둘은 다릅니다.

그냥 근황이 궁금한 것이라면 한 번 보고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를 잊었을까?”, “나 없이 잘 지낼까?”, “우리 관계가 그 사람에게도 의미가 있었을까?”가 궁금한 것이라면 SNS를

아무리 확인해도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확인할수록 새로운 궁금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확인하고 싶은 충동이 생겼을 때 바로 행동하지 않고 10분만 미뤄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절대 보지 말자”가 아니라 “10분 뒤에도 보고 싶으면 그때 생각해 보자”라고 정하는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확인했다면, 상대의 SNS 내용보다 내 기분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한번 살펴보세요.

보기 전에는 궁금했는데 보고 나서 더 궁금해졌는지, 마음이 편해졌는지, 오히려 서운해졌는지.

이걸 몇 번 반복해서 관찰하다 보면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만약 내가 원하는 것이 결국 “그 사람에게 나는 아직 의미 있는 사람인가?”라는 확인​이었다면,

그 확인을 계속 그 사람에게서 받으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사람의 연락, SNS, 주변 사람의 이야기 같은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기억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다시 채우는 것입니다.

친구를 만나고, 일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예전에는 하지 않았던 일을 시작하는 것처럼

지금 내 삶에서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감각을 다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것 하나는 기억해둘 만합니다.

그 사람이 나를 기억하든 잊었든, 그 관계가 내게 남긴 것은 이미 내 것이 되었습니다.

그 사람의 기억에서 지워진다고 해서 내가 그 관계를 살았던 사실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사람 관찰자의 생각

어쩌면 우리가 정말 두려운 건 그 사람에게 잊히는 게 아니라,

그 시간을 함께 보낸 내가 아무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는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흔적이라는 게, 꼭 상대의 기억 속에 남아야만 유효한 걸까요.

그 관계를 지나오면서 달라진 나, 그때 배운 것, 지금의 내가 관계를 대하는 방식.

이런 것들은 상대가 나를 기억하든 안 하든 이미 내 것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정말 확인하고 싶은 건 그 사람이 아직 나를 기억하고 있는지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 시간은 정말 의미가 있었는지, 나는 그 사람에게 정말 중요한 사람이었는지.

그런데 그 질문의 답을, 꼭 그 사람의 기억에서만 찾아야 할까요.

 

참고한 연구

  • Marshall, T. C. (2012), Facebook surveillance of former romantic partners: Associations with postbreakup recovery and personal growth, Cyberpsychology, Behavior, and Social Networking
  • Rosenberg, M., & McCullough, B. C. (1981), Mattering: Inferred significance and mental health among adolescents, Research in Community and Mental Heal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