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 마감이 코앞인데, 책상부터 치우고 있습니다

마감이 코앞입니다.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눈에 들어오는 건 책상 위 먼지입니다.

일단 그것부터 닦습니다. 서랍도 열어봅니다.

정리가 안 돼 있습니다. 그것도 정리합니다.

어느새 방 전체를 치우고 있습니다.

정작 해야 할 일에는 손도 안 댔는데, 이상하게 뿌듯한 기분마저 듭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사람 꼭 있습니다.

시험이 코앞인데 책상 정리부터 시작하는 학생.

"공부하려고 앉았는데 책상이 지저분해서 도저히 집중이 안 되더라"라고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정리는 꼭 시험 기간에만 열심입니다.

명절이나 제사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날, 갑자기 냉장고 정리에 꽂히는 어른들도 있습니다.

나물 무치고 전 부쳐야 할 시간에 냉장고 안 반찬통을 다 꺼내서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계신 걸 보면, "지금 이걸 하실 때가 아닌데" 싶으면서도 웃음이 납니다.

신기한 건, 이게 아무 딴짓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유튜브를 보거나 낮잠을 자는 게 아니라, 유독 정리하고 닦고 줄 세우는 행동으로 쏠립니다.

이런 현상에는 이름도 있습니다. '미루기용 청소(procrastination cleaning)'입니다.

2. 연구팀이 실제로 청소하는 손동작까지 측정했습니다

2015년 체코와 미국의 연구팀이 이 지점을 직접 실험했습니다.

생물학과 학생들에게 액체를 섞는 과제를 줬는데, 한쪽 그룹에는 그 액체가 "유해 물질"이라고 알렸습니다.

다른 그룹에는 "무해한 물질"이라고 알렸습니다.

그러니까 한쪽은 불안이 높아진 상태, 다른 쪽은 상대적으로 편안한 상태였던 셈입니다.

그런 다음 두 그룹 모두에게 작업대를 닦게 했습니다.

연구팀은 이때 손동작을 촬영해서 분석했습니다. 결과는 뚜렷했습니다.

불안이 높았던 그룹은 손동작이 더 반복적이었고, 더 정형화돼 있었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같은 동작을 되풀이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마치 정해진 패턴을 따라가듯 움직였습니다.

연구팀은 이걸 '엔트로피 이론'으로 설명합니다.

불확실하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예측 가능하고 반복적인 행동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것입니다.

청소는 그 조건에 딱 맞습니다.

손을 움직이는 순서가 정해져 있고, 결과도 눈에 바로 보입니다.

통제할 수 없는 큰일 앞에서, 통제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찾아 붙잡는 셈입니다.

다만 2022년 같은 연구팀이 진행한 후속 연구에서는, 청소를 다시 실험한 건 아니었습니다.

정형화된 행동 전반이 불안을 실제로 낮춰주는지를 다시 검증했습니다.

결과는 절반의 확인이었습니다. 정형화된 행동을 한 사람들의 불안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 차이가 아무것도 안 한 사람들이나 다른 활동을 한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아주 크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청소가 불안을 확실히 없애준다기보다는, 불안한 상태에서 사람이 자연스럽게 끌리는 행동 쪽에 더 가깝다고 보는 게 정확합니다.

이 연구를 보면서 좀 웃겼습니다.

똑똑한 학자들이 몇 년을 매달려서, 카메라로 손동작까지 하나하나 찍어가며 밝혀낸 게 뭐냐면요.

결국 "마감 앞두고 책상부터 치우는 그 마음"이었다는 겁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몸으로 알고 있었죠. 이제 좀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된 것뿐입니다. "이거 게으른 거 아니에요.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예요."

3. 그래서 이 마음, 어떻게 다루면 좋을까요?

이 충동을 무조건 나쁘게 볼 필요는 없습니다.

몸이 지금 불안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뿐입니다.

문제는 이 청소가 끝이 없다는 점입니다.

서랍 하나를 치우면 다음 서랍이 보이고, 방을 치우면 다음엔 옷장이 보입니다.

그 사이 정작 해야 할 일은 계속 뒤로 밀립니다.

그래서 이 충동을 아예 막기보다, 시간을 정해두고 활용하는 편이 낫습니다.

"10분만 정리하고 다시 앉는다"처럼요.

몸이 원하는 '통제감'을 짧게라도 채워주면, 그다음 어려운 일로 돌아가기가 조금은 수월해집니다.

그리고 하나 더 기억해 두면 좋습니다.

지금 청소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건 게을러서가 아니라 지금 마주한 일이 그만큼 부담스럽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몸이 먼저 알아채고, 손이 대신 다른 곳으로 향한 것뿐입니다.

 

 

사람을 지켜보면 이런 순간이 유독 눈에 띕니다.

정작 중요한 일 앞에서는 얼어붙어 있으면서, 사소한 것들은 유난히 부지런하게 해내는 모습이요.

게으른 게 아니라, 불안한 마음이 잠깐 쉴 곳을 찾고 있는 겁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면, 갑자기 청소가 하고 싶어지는 자신을 조금 덜 다그치게 됩니다.

 

출처

  • Lang, M., Krátký, J., Shaver, J. H., Jerotijević, D., & Xygalatas, D. (2015). Effects of anxiety on spontaneous ritualized behavior. Current Biology, 25(14), 1892–1897.
  • Lang, M., Krátký, J., & Xygalatas, D. (2022). Effects of predictable behavioral patterns on anxiety dynamics. Scientific Reports, 12, 19240.
  • Hirsh, J. B., Mar, R. A., & Peterson, J. B. (2012). Psychological entropy: A framework for understanding uncertainty-related anxiety. Psychological Review.
  • Dahl, T. I., & Klingsieck, K. B. (2020). How Study Environments Foster Academic Procrastination: Overview and Recommendations. Frontiers in Psychology, 11, 54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