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 해야 하는데, 하기 싫습니다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기 싫습니다. 그래서 잠깐 미룹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쉬고 있는데도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유튜브를 보다가도 그 일이 스쳐 지나갑니다.

밥을 먹다가도 문득 떠오릅니다. 자기 직전, 불을 끄고 누우면 갑자기 선명해집니다.

"아, 그거 해야 하는데." 그런데 다음 날이 되면 또 미룹니다.

손은 그 일을 피하고 있는데, 생각은 자꾸 그 일 곁을 맴돕니다.

도대체 왜 이럴까요.

이 낯설지 않은 모순에는 심리학이 오래전부터 눈여겨본 단서가 하나 있습니다.

1927년 심리학자 블루마 자이가르닉은 사람들이 끝낸 일보다 중단된 일을 더 잘 기억하는 경향을 보고했습니다.

이후 이 현상은 '자이가르닉 효과'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다만 최근 2025년 발표된 메타분석에서는 이 '기억 효과' 자체가 일관되게 재현되지는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대신 같은 분석에서 다른 흥미로운 경향 하나는 확인됐습니다.

사람들은 중단된 일을 유독 다시 붙잡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이걸 '오브샹키나 효과'라고 부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끝내지 못한 일이 다른 일보다 기억에 더 오래 남는다는 건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일을 마저 하고 싶다는 충동만큼은 꽤 분명하게 남습니다.

 

2. 그런데 왜 몸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을까요?

여기서 궁금해집니다.

그렇게 계속 신경 쓰인다면, 차라리 빨리 해치우고 싶어 져야 정상 아닐까요.

2011년 플로리다주립대학교의 메이시캠포와 바우마이스터는 이 지점을 실험으로 들여다봤습니다.

참가자들에게 목표를 준 뒤 중간에 멈추게 했습니다. 그런 다음 완전히 다른 읽기 과제를 시켰습니다.

목표를 끝내지 못한 참가자들은 그 새로운 과제를 하는 중에도 계속 다른 생각이 끼어든다고 답했습니다.

관련 없는 단어에도 유독 빠르게 반응했습니다.

쉽게 말해, 끝나지 않은 목표가 머릿속 한쪽에서 계속 '대기 중'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그 일을 붙잡지 않고 계속 피할까요.

2013년 시로이스와 파이칠은 여기에 다른 답을 내놓습니다.

미루기는 게으름이라기보다, 당장의 불편한 감정을 피하려는 단기적인 감정 조절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하기 싫은 일을 마주하는 순간 불안이나 부담이 먼저 올라옵니다.

그 순간의 감정을 줄이는 게, 나중에 치를 대가보다 우선순위에서 앞서게 됩니다.

문제는 이 선택이 정말로 편안함을 주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앞서 본 것처럼, 끝내지 못한 일은 계속 신호를 보냅니다.

그래서 미루는 동안에도 마음은 온전히 쉬지 못합니다.

2014년 시로이스의 연구에서는, 미루는 사람일수록 스트레스를 더 많이 경험했고

자기 자신에게 너그러운 정도(자기연민)는 더 낮은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 자기연민의 낮음이, 미루기와 스트레스 사이의 관계를 상당 부분 설명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루고, 그런 자신을 탓하고, 그 감정이 다시 불편해서 또 미루는 흐름이 이렇게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3.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메이시캠포와 바우마이스터의 실험에는 흥미로운 부분이 하나 더 있습니다.

참가자들에게 목표를 어떻게 실행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게 했더니, 앞서 나타났던 방해 효과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그 일을 끝내지 않았는데도 그랬습니다.

물론 계획을 세운다고 그 일을 반드시 하게 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언제, 어떻게 할지'를 구체적으로 정해두는 것만으로도,

계속 신경 쓰이던 목표를 잠시 내려놓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번 주 목요일 오후, 딱 15분만 이 문서를 열어본다"처럼요.

그리고 하나 더. 미루고 나서 자신을 몰아세우는 대신, 조금 다른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게으르지?"가 아니라 "지금 내가 피하고 있는 감정은 뭘까?"라고요.

시로이스의 연구가 알려주듯, 자책은 다음 미루기를 부추길 뿐입니다.

 

 

사람을 지켜보면 재미있는 지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미루는 걸 '일을 피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가 정말로 피하는 건 일 자체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 일을 시작했을 때 밀려올 부담감, 잘 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손은 그 일을 피하고 있는데, 생각은 오히려 그 일 곁을 떠나지 못합니다.

미루는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쩌면 불편한 감정과 조용히 씨름하고 있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출처
Zeigarnik, B. (1927). Über das Behalten von erledigten und unerledigten Handlungen. Psychologische Forschung.
Ghibellini, R., & Meier, B. (2025). Interruption, recall and resumption: a meta-analysis of the Zeigarnik and Ovsiankina effects.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Communications, 12, 962.
Masicampo, E. J., & Baumeister, R. F. (2011). Consider it done! Plan making can eliminate the cognitive effects of unfulfilled goal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01(4), 667–683.
Sirois, F., & Pychyl, T. (2013). Procrastination and the Priority of Short-Term Mood Regulation: Consequences for Future Self. Social and Personality Psychology Compass, 7(2), 115–127.
Sirois, F. M. (2014). Procrastination and Stress: Exploring the Role of Self-compassion. Self and Identity, 13(2), 128–145.